한국의 디테일: 뭔가 달라도 다르다

문득 브랜딩 책들을 보니 ‘디테일’에 대한 얘기가 많더라고요. 맞습니다. 결국 브랜딩은 거대한 지향점에서 시작해서 디테일로 완성되죠. 폭망도 디테일에서 시작되고요. 그래서 브랜드 좀 한다는 분들은 디테일과 애티튜드에 집착합니다. 그런데 보아하니… 대부분 유럽이나 일본의 디테일의 예를 들더라고요.

물론 일본 디테일은 인정합니다. 책 하나 집는데도 15도를 기울여서 사람이 집기 편하게 놔둡니다. 세상에 껌 통에 껌 종이도 집어넣어요. 껌 씹고 뱉으라는 거죠. 오메… 그런데 말입니다. 이걸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이야기하다가 또잉? 스러운 지점을 발견한 거예요. 껌 종이 말고 껌을 좀 왕창 넣어주면 좋겠는데? 싶은 거죠.

그러네?

물론 압니다. 이미 결과가 나왔으니 우린 그걸 평가하는 입장이라는 걸. 실제로 말 안 하고 껌 종이가 들어있었으면 또 감동했겠죠(그게 무슨 종이인지 이해했다는 전제하에). 하지만 뭔가 한국의 디테일은 조금 결이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한국 사람들에게 필요한 디테일은 무엇인지 웃자는 얘기와 함께 버무려보았습니다. 꼬!

1. 고객에게 차원 도약을 선사

부산에서 신박한 경험을 했습니다. 부산역까지 가야 하는데 기차 시간이 간당간당한 거예요. 그래서 택시기사님께 빨리 가달라고 했죠. 아저씨는 핵 쿨하게 물어보더군요.

“몇 시 차요?”

“아 네… 5시 20분 차예요…”

“음… 보자…. 가입시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스라다로 빙의해서 갑자기 택시가 불을 뿜는데 전 진심 4G의 중력을 느꼈습니다. 살아온 세월을 주마등처럼 되돌아보게 되고, 지금껏 가진 허튼 고민과 걱정을 일순간 내려놓게 되었죠. 삶에 감사하게 되었달까요.

아저씨의 사명감은 격렬했습니다. 정확히 5시 10분(센텀에서 15분에 찍어버림…… 이건 거의 차원 도약 수준)에 도착했습니다. 아직 영혼이 따라오지 못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데 아저씨가 담담하게 얘기해주시더군요.

뛰어가면 타것네.

하아…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속도전쟁. 이런 분들이 계시기에 우리나라의 거친 속도는 유지되는 듯합니다. 이것도 서비스라면 서비스라고 할까요. 다들 업의 자부심이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을 잘한다’라는 스스로의 뿌듯함이 있나 봐요. 특히 택시기사 아저씨들은 내가 도로를 지배한다라는 프라이드가 라이온 킹인 듯.

2. 매웅거! 매운맛! 매콤한 맛!

우리나라 사람들 매운 거 겁나 좋아합니다. 음식을 만들려거든 무조건 매운맛이 있어야 합니다. 전혀 맵지 않을 것 같은 우동도 맵게 먹는 우리들입니다. 진라면도 순한 맛 매운맛이 있고, 너구리도 그렇습니다. 점점 더 매운 라면이 나오는데 매울수록 더 잘 팔리는 기이한 현상도 발생합니다.

그래서 늘 우리나라의 메뉴판은 4단계죠. 순한 맛, 보통, 매운맛, 불지옥 맛(보통이라고 안 매운 건 아님). 참고로 여기서 맵다는 건 아 화끈하다~ 감칠맛이 난다~ 뭐 이런 게 아니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강렬한 스코빌의 그것을 의미합니다.

  • = 매운 메뉴 추가하기

3. 원래 안 되는 건데… 하아 참…

  • = 원래는 안 되는 거 해주기(적당히)

원래 안 되는 데 해주면 겁나 좋아합니다. 하이고오 참 내사마… 이라믄 안 되는데 거 허허허허 이싸람… 이러면서 봉투 찔러넣을 것 같은 느낌이지만 굳이 그런 부정함이 아니라도 나만을 위해 뭔가 규칙을 어기는 느낌은 기분이 좋습니다. 원래 안 되는 데 쿠폰 돌려써 주거나, 원래 안 되는 데 이거 더 챙겨드린다거나, 사장님 안 계셔서 제가 좀 더 넣었어요라든가…

4. 서비스 주기

술집에서 어묵탕, 모둠꼬치, 불닭발, 소주 3명 맥주 3병 시키면 1시간 정도 뒤에 황도나 계란말이가 나옵니다.

서비스예요.

아주 좋아. 짜릿해. 계란 황도 감자튀김 맛있어. 서비스면 더 맛있어. 감사합니다. 주인님 또 올게요.

5. 점원이 먼저 막기

이거 제가 아디다스에서 신발 팔 때 자주 쓰던 건데, 손님이 딱 봐도 발볼이 넓은 거야. 근데 지금 고른 신발이 핵예템이긴 한데 이게 분명 발을 엄청 쬐일거거든. 사실 점원끼리 판매 경쟁으로 스티커 붙일 때라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하긴 하는데 아무리 봐도 이건 일주일 신고 (더럽힌 후) 환불각인 거죠. 그리고 저러면 발이 굉장히 아프다고. 내가 아파봐서 알아. 말렸어요.

고갱님. 이거 발볼 쪼여서 나중에 발가락들 구겨져요. 발 옆에 다 까지고. 이거 좋고 이쁜 건 알겠는데 발 건강이 우선이잖아요. 이거 말고 다른 거 찾아보세요. 좀 더 싸고 편한 신발들 많아요.

고갱님 감동해버렸어요. 내 발 건강을 염려해주는 이런 점원이라니…진정성 어쩔 셈이야

  • = 패기 넘치는 점원 되기

6. 혜택 먼저 말해주기

할인이 되는 모든 방법을 기억해봅시다. 고갱님이 농협카드를 내밀 때 그에게 소근소근 말합니다.

“어머! 이거 말고 신한카드 있으세요? 30% 할인되거든요.”

“아 진짜요? (주섬주섬) 야 너 신한카드 있어?”

그가 바보같이 단품으로 시킨다면,

“어머! 지금 콤보로 시키시면 두 배 할인되는데!”

“아 그럼 모닝 콤보로 주세요!”

30%만큼 감동해.

  • = 혜택 좌르륵 외우고 다니기

7. 와우 고갱님 너어무 이쁘시다!

신발 팔고 옷 팔 때 피팅룸 가서 갈아입고 나오잖아요. 그럼 일단 고개를 두 번 젓고 엄지. 와… 핏 무엇? 오 딱 좋아요. 하고 박수 세 번 깔끔하게. 근데 고객이 대충 입 발린 소리란 걸 아니까 종종 이렇게 물어봐요.

아 진짜 솔직히 이게 이뻐요 이게 이뻐요?

그럼 이제 바로 5번 모드로 들어가요.

솔직히 이쪽이 더 나아요. 이건 이쁜데 진짜 길 가면 10명 중 12명은 입어서 평행우주 느낄 수 있음.

이라고 말해주는 거죠.

  • = 어머 너무 이쁘시다 입에 달고 살기 + 5번 모드

8. 어 그냥 놔두고 가시면 돼요.

카페에서 이거 어디다 놔요?라고 종종 물어보면 손사래와 함께 ‘거기 두시면 돼요!’라고 말해주는 경우가 있어요. 뭔가 미안한데 또 고마워. 이건 종종 패스트푸드 점에서 남은 거 버리려고 퇴식구 가면 청소하던 알바님이 ‘저 주세요’ 하고 받아줄 때의 감사함과 비슷하달까요. 사실 전 이거 편하기도 하고 상당히 고맙더라고요.

  • = 어 그냥 놔두면 치워주기

9. 꽝 없는 이벤트

일단 뭘 주면 좋아해요. 스티커든 사탕이든.

10. 피트니스장에서 헬저씨의 조언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조언을 서슴없이 내뱉는 건 종종 매우 득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안 물어봤는데 알려주면 기분이 나쁘지만, 이런 경우는 좀 다르죠. 헬저씨들은 우리의 허리와 무릎, 어깨 부상을 염려해주십니다. PT 선생님 부럽지 않은 지식과 훌륭한 트레이닝까지 무료로 해주십니다. 박카스나 비타 500 한 병이면 충분하죠.

대한민국에서 [ 헬저씨 ]로 산다는 것…낚시 포인트에서도 아저씨들끼리 미리 말해줍니다. 거기 안 잡힌다, 찌 가라앉았다… 등등. 당구장에서도 그거 대 휘었다고 말해주고, 앞차 타이어 공기압 빠지면 가서 위험하다고 말해줍니다. 앞사람 셔츠 삐져나오면 가서 말해주고 싶고 그렇습니다. 뭔가 적극적으로 남에게 조언을 하고 싶어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입니다.

  • = 쓸모 있는 조언 해주기

11. 드립 좋아해

우리나라 사람들 드립 짱 좋아합니다. 온라인 콘텐츠 만드실 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지고 놀기 좋게 만들어주세요. 특히 단합력이 돋보이는 드립을 좋아합니다. 콘텐츠를 만들 땐 내가 생산자다…란 마인드보단 일빠를 끊는 댓글러 중 한 명이다…라고 생각하고 만들어보세요.

  • = 재밌는 드립을 유도해보기

12. 와이파이

우리나라에선 와이파이가 안 터진다면 이건 기본이 안 된 겁니다. 우린 딱 누르면 바로 다운받는 속도를 원합니다. 카페가 아무리 이뻐도 와이파이 느리면 안 가는 사람들 같으니… 안 터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느릴 뿐인데.

  • = 무조건 10G 폭풍 와이파이

13. 인증번호가 자동 입력

디테일이니까 디테일하게 가봅시다. 전화번호 입력할 때 TAB 안 누르고 바로바로 칸 넘어가면 기뻐요. 주소 찾을 때 지번/도로명 함께 나오게 검색할 수 있게 해 주면 좋아요. 인증번호도 문자 받으면 그냥 바로 뜨는 걸 좋아해요. 카드 앱들은 이번 달 낼 금액과 할부/일시불 얼마 얼마인지 딱 한눈에 보여주세요. 사람들 궁금한 건 오늘 내가 어디에서 돈 썼나가 아니에요. 낼 돈이 얼만지가 더 궁금하지.

  • = TAB 안 눌러도 되게 만들어주기

14. 귀여운 거!

일본처럼 사방에 캐릭터가 있는 나라는 오만 천지가 귀여운 거라 별 감흥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꽤 딱딱함이 가득한 곳인지라 조금만 귀여운 게 있어도 아주 훌륭하죠. 문 앞에 새끼 강아지도 그렇고 호박에 눈코 입만 그려놔도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15. 어 저번에도 오셨죠!

나를 기억해주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딨겠어요! 좋아하죠. 내 옆에 누가 있었는지도 함께 기억해주면 더 감동이죠. 심지어 내가 자주 사는 물건이 뭔지도 기억해주면 너무 좋아요. 물론 점원 입장에선 그런 건 어렵긴 해요. 하루에도 수백 명을 만나니까요. 하지만 확실히 인상 깊은 고객님들은 기억하게 되더라고요. 디테일을 살리고 싶다면 고객 메모를 꼭 남겨보도록 하세요.

  • = 고객 메모 남기기

16. 보리차! 얼음물!

술집에서 얼음물 주면 좋아해요. 식당에서 시원한 보리차 나오면 세상 좋아해요. 혹시 어르신 있으면 따스운 보리차 내드리면 정말 좋아해요. 우리나란 물 한잔에도 배려를 녹일 수 있어요. 외국은 물도 다 사 먹어야 해요. 우리나라만 가능한 거.

  • = 얘네들 좀 취한 것 같으면 얼음물 주기

17. 오라이 오라이

뒤 범퍼 안 박히게 도와주는 건 민족의 전통입니다. 오라이 오라이 해줘요. 특히 측면 주차 어려워하는 분들 대신 주차해주면 눈물.

  • = 상대의 뒤 범퍼를 내 것처럼 오라이

18. 배달

저게 배달이 돼? 스러운 것도 배달이 되는 우리나라. 배달과 짐 맡아주기, 앉을 자리 주기, 겨울철 대기 줄에는 따뜻한 열풍기 놔주기 등 운송과 대기 관련한 서비스를 제공해주면 엄청 좋아해요.

  • = 한 잔도 포장해주기. 대기 줄엔 플라스틱 의자. 겨울엔 핫팩 하나씩 쥐여주기.

19. 친해지면 내 가족

외국에서 한국인은 굉장히 차갑다는 평을 많이 들어요. 심지어 우리나라 사람끼리도 서로 서먹하죠. 하지만 한 끼만 같이 밥 먹고 맥주 마시면 세상 이런 내 편이 없음… 오지랖이 좀 심해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친분이 한 번 생기면 또 굉장히 끈끈해지는 특수성이 있어요. 고객과도 묘한 친분을 쌓아두면 좋을 때가 있답니다.

  • = 영업의 기본은 일단 형제자매 되기

20. 맛있는 행사 점심

제아무리 원수 같은 정몽주와 이방원도 서로 식사하시라고 자기 집으로 초대했던 우리 민족입니다. 아무리 미워도 밥은 주고 보냅니다. 밥 먹을 땐 건드리지도 않아. 결혼식을 비롯한 경조사도 그렇고… 모든 것이 밥으로 시작해서 밥으로 끝납니다. 고객들의 위장을 고려해봅시다.

  • = 행사의 꽃은 맛있는 밥

맺는말

물론 웃자고 쓴 글이긴 합니다만, 전 이렇게 생각해요. 일본의 디테일이나, 해외사례들을 보고 매우 큰 감명을 받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인사이트를 득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수도꼭지만 가져온다고 물이 나오는 것은 아닌 것처럼 ‘형식’ 보단 ‘관찰의 힘’ 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들이 껌 통에 종이를 넣었으니 우리도 넣자!는 말보다, 어떻게 관찰했고 어떻게 배려할지 먼저 고민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만의 특색 있는 문화가 있습니다. 뭔가 거칠고 급하고 빠르지만 직설적이고 표현이 크고 연대감이 높은 편이죠. 개개인의 특성을 모두 고려할 순 없지만 혹시 이 글을 보고 몇 개에서 무릎을 치셨다면 분명 우리가 공유하는 특정한 패턴이 존재한다는 얘기예요.

우리가 브랜드를 다루거나 오프라인 행사의 디테일을 마련하기 위해선 이런 관찰과 정리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들은 밥 먹고 자판기 커피를 드십니다. 젊은 사람들은 달달한 걸 당겨 하죠. 그건 우리나라 음식이 전반적으로 겁나 짜고 탄수화물이 많기 때문이에요. 과학적으론 혈당 수치를 급격하게 높이고 인슐린 이를 격하게 떨어뜨리면서 혈당이 다시 바닥을 치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단 것이 당기죠. (매우 건강에 안 좋음…) 그래서 식당 카운터 앞엔 사탕이 놓여있어요.

브랜드 서적에 정리되어 있지 않지만 수많은 경험과 고객들의 요구로 인해 만들어진 디테일의 일종이죠. 이런 사소한 것들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늘 궁그미한 시선을 유지해보세요. 사탕에도 휴지통 비닐에도 열풍기에도. 🙂

원문: 박창선의 브런치